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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ㅣ연재 > 이정인 예술감독 기독무용 | ||||||||
중세시대의 기독교무용 2 | ||||||||
기독교 무용의 길을 찾아서 16(이정인 현대무용단 단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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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인들은 보여 주기 위한 공연자가 아니라 일반 기독교인으로서 이런 단순한 춤들을 추었다. 성 바실리우스는 무용은 천국에서도 하는 것이므로, 성도들이 지상에서 마땅히 잘 익혀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407년에 죽은 요한 크리소스톰은 병 때문에 예배무용을 한번 쉬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일을 사과하는 뜻에서 사과장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할 만큼 “예배무용은 교회로서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무용의 중요성은 중세 신학이 발달됨에 따라 쇠퇴하기 시작하였는데, 급기야는 교회 내에서의 무용금지령까지 내려지게 됐다. 모든 학문은 ‘신학의 시녀’라고 불릴 만큼 절대적 권력을 갖게 된 중세 신학은 점차 사변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인간의 영혼과 육체에 대한 관념이 분화됐다. 플라톤의 사상을 신봉하는 스콜라 철학은 육체에 대한 가치를 평했으며, 자연스럽게 기독교 교리는 무용을 배척, 금지했다. 이 시기에 교회는 더욱 권위적으로 되었으며 예전의 모든 형태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일부 무용에 반대하는 법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이러한 통제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형식의 춤은 일단 사라지고 말았다. 심지어 무용을 비도덕적으로 정죄했고, 사탄에 의해 발명된 것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무용하는 자들에 대한 형벌로 발을 자르기도 하고 지쳐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하였으며 결국은 화형을 시키는 일도 진행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금지와 제한도 불구하고 중세기에 잔존하는 소그룹들에 의해 여전히 기뻐하며 찬양하는 예배가 드려졌고 춤추며 찬양하는 것에 적절함과 필요성을 이해한 몇몇 사람들로 인해 강조됐다. 그 중 자치안추스의 성 그리고리는 “나는 다윗과 같은 춤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으로써 여호와의 법궤에 대한 신선한 의미를 부가시켜 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으며, 로마의 성 바시리우스는 “무용하는 것은 천국에 있어서도 중요한 직분이므로, 신자들은 지상에서 이것을 잘 습득 하여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1327년 한 중세 교회에서는 다윗왕의 춤처럼 합창자들의 활기 있는 춤 행렬 뒤에는 더욱 경건한 춤을 추었다고 하였으며, 14세기 찬송가 작가들은 원무와 행렬무에 대하여 언급하고 합창자들이 원무를 추며 부르는 찬송가를 작사했다. 이렇게 중세 시대의 무용은 문화의 변화와 사회적 위기를 겪으면서도 집단생활의 솔직한 표현으로서 존재해 계속 위치를 굳혀 왔고, 중세 안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 무용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활용이 이루어지면서 그 위치에 상당한 변화를 갖게 됐다. 문예부흥기를 맞아 엄격하고 권위주의적인 교회의 세력아래서 개인의 자유와 욕구가 억압되었던 백성들은 점차 개인의 만족을 추구하고 자유를 얻기 시작하면서 춤과 노래에 창조력과 새로운 표현이 가능하게 됐다. 이 시기에 발레가 발달해 대중화되고, 그 외에 궁정무용과 민속무용은 각 특성대로 활발하게 발전 되었으며, 예술이 재탄생됐다. 교회에서의 예배 무용도 보다 활발하고 다양하게 이뤄졌으며, 관능적이고 음란했던 중세의 무용이 아닌 종교적 색체를 띠게 됐다. 저작권자 기독타임즈 ⓒ무단전재 공유언론사, 협력교회 및 기관 외 재배포 금지 대전충청지역 대표 기독교주간신문사 기독타임즈(kdtimes@hanmail.net) 운영이사장=정민량 목사ㅣ 발행인=오종영 목사 ㅣ 편집국장=문인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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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7/05 [11:47]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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